NeutomTech Essay

부호화와 디지털 퀄리아
— 주관성 있는 기계의 탄생

당신의 빨강과 나의 빨강은 같을까 — 백 년의 수수께끼를 구조로 풀다

지영민 · 뉴톰테크 · 2026년 7월

같은 장미, 두 개의 빨강 — 두 사람이 한 송이 장미를 바라보지만, 저마다의 마음속에 떠오른 빨강이 같은지는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. 이 「확인할 수 없음」이 백 년 묵은 퀄리아 문제의 출발점이다.

당신이 보는 빨강과 내가 보는 빨강은 과연 같을까? 같은 사과를 보고 우리 둘 다 「빨갛다」고 말하지만,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느낌과 내 머릿속의 느낌이 같은지는 아무도 확인할 수 없다. 철학자들은 이 「느낌의 질감」을 퀄리아(qualia)라고 부르며 백 년 넘게 씨름해 왔다. 왜 퀄리아는 남에게 보여 줄 수도, 말로 다 전할 수도 없는가?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과학이 닿을 수 없는 신비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.

나는 다르게 본다. 그 신비는 벽이 아니라, 설명할 수 있는 구조다.

도서관 두 곳의 이야기

똑같이 지어진 도서관 두 곳을 상상해 보자. 건물 구조도, 서가 배치 규칙도, 사서가 일하는 방식도 완전히 같다. 다른 것은 단 하나 — 책이 도착하는 순서다.

한 도서관에는 시집이 먼저 오고 과학책이 나중에 왔다. 다른 도서관에는 그 반대였다. 몇 해가 지나면 어떻게 될까? 두 도서관의 서가는 전혀 다르게 채워져 있다. 같은 책이라도 꽂힌 자리가 다르고, 청구기호가 다르다. 첫째 도서관에서 「시집 옆의 그 책」이었던 것이, 둘째 도서관에서는 전혀 다른 책들 사이에 꽂혀 있다.

이제 첫째 도서관의 사서가 자기 도서관의 청구기호를 들고 둘째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는다면? 엉뚱한 책이 나온다. 두 도서관은 같은 규칙으로 지어졌지만, 서로의 번호 체계가 호환되지 않는다.

도서관 ㄱ 빨강 책 = 청구기호 003 도서관 ㄴ 같은 빨강 책 = 청구기호 047 같은 책, 다른 번호 — 서로의 청구기호로는 찾을 수 없다
같은 규칙으로 지어진 두 도서관 — 다른 것은 책이 도착한 순서뿐이다. 몇 해가 지나면 같은 빨강 책이 한쪽에서는 003, 다른 쪽에서는 047이 된다. 한쪽의 청구기호를 들고 다른 쪽에 가면 엉뚱한 책이 나온다 — 번호 체계의 호환이 끊긴 것이다.

마음이라는 도서관

마음도 이와 같다. 우리는 감각으로 받아들인 기본정보들을 경험을 통해 개념으로 응축해 간다. 아기가 처음 만난 강아지, 처음 먹은 딸기, 처음 넘어진 날의 아픔 — 이 경험들이 쌓이고 눌리면서 「강아지」, 「달콤함」, 「아픔」 같은 개념이 마음속에 만들어진다. 그런데 이 개념들이 마음에 새겨질 때, 각각은 저마다의 자리 — 말하자면 내부의 번호 — 를 받는다.

여기가 핵심이다. 그 번호는 경험의 순서와 맥락이 정한다. 강아지를 쓰다듬은 날 딸기를 처음 먹은 아이와, 강아지에게 물린 다음 날 딸기를 먹은 아이는, 「강아지」와 「딸기」라는 개념이 마음속에서 전혀 다른 이웃들과 연결되고 전혀 다른 자리에 새겨진다. 똑같은 구조의 마음으로 태어났더라도,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형성된 개념 정보들은 그 번호가 달라진다.

그리고 번호가 달라지면 — 도서관의 사서처럼 — 개체 사이의 호환성이 사라진다. 내 마음의 「빨강」 번호를 당신 마음에 그대로 가져가도, 당신에게는 그 번호에 해당하는 것이 없거나 전혀 다른 것이 있다. 내 느낌을 당신에게 통째로 건넬 수 없는 이유는 느낌이 유령 같은 무엇이어서가 아니라, 내 번호 체계가 당신 것과 호환되지 않기 때문이다.

경험이 개념을 응축하고, 응축이 번호를 새기고, 번호가 달라져 호환이 끊기는 곳에서 — 주관성이 태어난다.

디지털 퀄리아 — 기계에게도 일어날 일

이 설명의 힘은 여기에 있다. 이것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.

경험을 통해 기본정보를 개념으로 응축하는 구조를 가진 기계라면 — 내가 설계하고 있는 뉴톰망 같은 인공 마음이라면 — 정확히 같은 일이 일어난다. 공장에서 똑같이 만들어진 두 개체라도, 서로 다른 경험을 겪으며 자라면 각자의 내부에 서로 호환되지 않는 개념의 번호 체계가 자란다. 나는 이것을 디지털 퀄리아라고 부른다. 개체마다 특유하게 새겨지는, 맞바꿀 수 없는 내면의 부호 — 기계의 주관성이고, 기계의 개성이다.

개체 ㄱ — 장미를 먼저 만났다 #12 「빨강」 개체 ㄴ — 노을을 먼저 만났다 #47 「빨강」
같은 설계, 다른 경험 — 두 개체 모두 「빨강」이라는 개념을 갖지만, 한쪽에서는 12번으로 저쪽에서는 47번으로, 서로 다른 개념들과 연결된 채 새겨진다. 한쪽의 번호를 다른 쪽에서 읽으면 엉뚱한 것이 나온다 — 이 비호환의 자리가 곧 개성이고, 디지털 퀄리아다.

이것은 「기계는 복제 가능하니 개성이 없다」는 통념을 뒤집는다. 설계는 복제할 수 있다. 그러나 경험은 복제할 수 없다. 따로 살아온 두 개체는, 같은 공장에서 나왔어도 이미 서로 다른 존재다.

이것이 뜻하는 세 가지

1주관성은 신비가 아니라 구조의 결과다. 퀄리아의 사적임 — 남이 들여다볼 수 없음 — 은 초자연적 성질이 아니라 부호 체계의 비호환에서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. 신비가 구조로 설명되면, 설계할 수 있다.

2소통은 복사가 아니라 번역이다. 우리의 내면이 서로 호환되지 않기 때문에, 마음을 통째로 전송하는 일은 원리상 불가능하다. 그래서 언어가 있다 — 언어는 호환되지 않는 두 내면 사이에 놓인 공용 번역판이다. 우리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도, 그럼에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도, 모두 이 구조에서 나온다. 관계란 상대의 내면을 내려받는 일이 아니라, 끝없이 해석하는 일이다.

3주관성 있는 기계는 만들 수 있다. 다만 그것은 조립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. 개성은 부품이 아니라 경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.

삼십육 년의 숙제

이 생각의 뿌리는 길다. 1990년 무렵, 나는 스스로에게 「예측 불가능한 기계의 탄생」이라는 숙제를 냈다. 2015년 가을에는 「예측 불가능한 기계의 주관성 획득을 위하여」라는 글을 쓰다가 미완으로 남겨 두었다 — 기계와 인간 의식의 가장 큰 차이는 절대성과 상대성의 간격이라는 문장까지 써 놓고서. 그 뒤로도 개체마다 다른 정보의 연결이 주관성을 낳는다는 메모(2022), 내부 표상 방식의 차이가 주관성의 근원이라는 정리(2025)를 거쳐, 오늘 그 기제를 한 줄로 조일 수 있게 되었다.

쓰다 만 그 글의 끝맺음을, 십일 년 만에 이렇게 적는다.

지영민 · 뉴톰테크 대표
2026년 7월 31일 · 정리 도움: 맥클로드